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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 Column

나도 그 어른들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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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 어른들 처럼?...

 

오늘은 직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하나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아시는 분은 알다시피 저희 직장은 2~3년을 주기로 해서 지사를 옮기면서 다닙니다. 대구안에서도 4~5년 이상 있지 못하고 외지에 한 2년 정도 가서 근무를 한 후 다시 대구로 복귀하는 인사 제도를 이용하고 있지요.

외지에 나가는 직원을 위해서 특별히 회사에서 아파트나 빌라를 전세 임대하여 직원들이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기도 합니다.

 

2007년 2월, 대학원을 다니는 바람에 남들 보다 조금 더 긴 6년간의 대구 생활을 마치고 저도 드디어 영주라는 오지로 2년간의 외지생활을 시작하였죠. 생전 처음 하는 관사에서의 공동체 생활. 다들 나이가 있으시고 어른들이어서 서로를 존중하고 편하게 공동체 생활을 할 것으로 기대를 했었습니다.

 

근데 웬걸,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생활의 모습이 다르다는 걸 확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저보다 10살 이상 많으신 분 두 분이서 저랑 같이 숙소 생활을 하셨습니다. 애처가셨는지 어찌나 가정생활에 관심이 많은지 숙소 청소부터 계란 후라이 할때 사용하는 기름의 양, 아침에 밥을 해야지, 저녁에 미리 밥을 해 놓으면 안된다는 등, 정말 왜 부부가 이혼하는지 깨닫게 할 정도로 잔소리가 많으셨습니다.

 

영주는 오지여서 대구보다 업무량이 적어 참 편했는데, 저녁만 되면 숙소 들어가기 무서워 스트레스를 참 많이 받았죠. 그 잔소리는 안 들어본 사람은 아마 모르실 겁니다. ㅎㅎ

 

다행히 2008년 11월부터는 숙소가 늘어나 그 분들이 제가 있는 빌라보다 더 좋은 전세값 비싼 아파트로 옮기셨습니다. 그래서 행복하게 혼자서 처음으로 객지에서의 자취생활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죠. 어찌나 자유롭던지, 이게 행복이구나 싶을 정도 였습니다. ^^

 

근데 11월말쯤 같은 지사에 있는 저보다 5살 어린 후배 사원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차가 없어져서 출퇴근이 어렵다면서 저희 숙소에 들어와 당분간 살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사정이 딱해서 들어와 편히 지내라고 했죠. 집이 영주와 가까운 풍기였지만 차 없이 출퇴근 하기에는 좀 먼 거리였습니다.

 

서로 별 터치 안하고 1주간 잘 지내는 듯 하나 싶었는데, 사건이 터지고 말았죠.

 

저는 금요일 밤이 되면 대구로 내려오고 그 친구는 토요일 하루를 더 숙소에서 머물면서 일요일만 집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1주가 지난 후 월욜 아침에 회사에 출근을 했다 일과를 마친 후 저녁에 숙소를 갔는데 화가 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토요일 하루 더 숙소에 머문 그 친구가 라면 등 음식을 해 먹고는 냄비와 식기를 설거지 하지 않은 채 싱크대 개수구에 처 박아 놓았더군요. 깨진 계란껍데기와 같이...

 

좀 황당하더군요. 아무리 그래도 나이가 그만큼 들었으면 자기가 먹은 것은 자기가 치워야 맞는데... 화는 좀 났지만 처음이라서 그럴려니 생각하고 설거지를 다 해놓고 아무 소리 안하고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근데 며칠 후 똑같은 일이 벌어지더군요.

 

순간 화가 좀 많이 나대요.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이게 뭐하는 짓인지..라면서...

 

그때 그 화가 나는 순간에 제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대식아 니가 어른들하고 숙소생활하면서 어른들의 잔소리 때문에 화가 많이 났었고 시달렸었지? 혹시 지금 니가 화내는 그 마음이 그 때 어른들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물론 숙소생활을 할 당시에 같이 계셨던 어른들은 지사에서도 알아주는 잔소리 꾼들이었고 자기가 먹은 음식물과 식기를 씻지 않는 것은 상식 밖의 철없는 행동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 순간 제 마음 속에는 이 생각이 너무 강하게 들어왔습니다.

 

"내가 만약 그 후배를 불러서 어른들이 내게 잔소리 하듯이 그 후배에게 막 뭐라고 하고 일일이 다 지적한다면 내가 싫어했던 그 어른들과 내가 다른게 뭐가 있지?"

 

어른들이 나에게 지나치게 잔소리 했던 것이 잘못되었고, 지금 후배가 한 행동이 누가 봐도 잔소리 들을 행동이었다고 가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어른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저에게 잔소리를 한 것이고, 나도 후배에 대해서 화를 내는 것도 나 나름대로의 기준 때문에 화가 나는 거라면, 자기 기준으로 남을 탓하는 것은 그 어른이나 저나 똑같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죠.

 

결국 저는 후배에게 아무 소리 안했고, 대신 설거지를 다 해주었죠. 그리고 사무실에서 지나가던 후배의 엉덩이를 손으로 치면서 한 마디 했죠. 농담삼아.. " 야! 임마, 니가 먹은건 니가 치워야지...ㅎㅎ "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더 이상 아무 소리도 안하고 그냥 있었습니다. 그 다음 주에도 그 후배는 토욜 또 치킨과 짜파게티를 해 먹고는 개수구 안에 까만 짜장이 묻은 냄비를 고스란히 남겨두었더군요. 아, 한가지 더 발전한 것은 있었습니다. 쓰레기가 가득했던 휴지통은 치웠더군요..ㅎ

 

월욜 저녁 3주 동안 어김없이 까만 짜장이 묻은 냄비를 설거지 하면서 참 많이 웃었습니다. 이렇게 아무 소리 안하고 설거지하고 있는 제 모습이 내심 좋았습니다.

 

월욜 밤에 그 후배가 들어오면서 설거지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한마디 하더군요.

"과장님, 오늘은 제가 설거지 하려고 했었는데..."

 

크리스마스 때 영주를 떠나 대구로 와서 쉬고 있을 때 였습니다.

 

그 후배가 전화가 왔더군요.

"정 과장님, 뭐 하십니까? "

"응, 대구다. 왜 무슨 일 있냐? "

"아닙니다. 그냥 보고 싶어서요..."

 

그 전화를 받고 난 뒤 제 얼굴에는 그냥 미소만 가득했습니다.

 

 

모 자매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한 기억이 납니다. "저는 말을 참 중요하게 생각해요..."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

 

꼭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마음으로 감싸안고 마음으로 사랑하고 마음으로 좀 더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걸로 충분히 세상은 아름다워질 것 같습니다.

 

자기와 좀 다르다고 생각되더라도 굳이 바꾸려고 이런 저런 말들을 하지 맙시다. 사랑으로 행동으로 감싸 안아 줍시다. 그러면 가슴에 기쁨이 가득할 것입니다.

 

'보고 싶다'는 전화를 받을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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